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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2-18 17:36
다큐멘타리, 기획에서 제작까지(6)
 글쓴이 : ㅁㄴㅇ
조회 : 5,846  
제6장 작품의 구성

조사 작업 후, 스크립트 초안을 작성하기 전에 몇 가지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당신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작품을 관객의 흥미를 끌어내면서도 논리적이고 감정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네 가지 영역이 해당된다. 접근 방식, 스타일, 형식 그리고 구성, 이 네 가지는 서로 중복되고 때로는 분리하기가 어렵다. 형식은 구성에 포함되고 또
접근 방식과 스타일을 따로 구분하기 어렵다. 이러한 중복 때문에 순서 없이 다룰 수도 있겠지만, 나는 위에서 제시한 순서대로 각 영역을 다루는 것이 편리하다고 본다.

접근방식

모든 안개가 걷히고 나면 전체적인 접근 방식에 있어서 대체로 두 가지 중요한 선택이 남는다. 에세이냐, 해설이냐 하는 것이다. 이에대한 나의 생각은 간단하다. 에세이 방식도 좋지만 30분이 넘을 경우 관객의 흥미를 유지하기가 힘이 든다. 30분 동안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대해 일반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만일 한 시간짜리라면 아라파트나 PLO
에 대해 다루는 것이 좋다. 나는 사람들이 이야기, 특히 극적 구조와 갈등, 눈길을 끄는 인물, 반전, 생명의 위협 등이 들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진실이 허구보다 더 기막히고 흥미롭다는 옛말을 믿는다. 다큐멘터리 기능의 일부는 그러한 놀라운 삶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을 생각할 때 나의 첫 관심은 좋은 이야기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뛰어난 작품들 중에는 두 가지 방식, 즉 추상적이고 지적인 아이디어와 이를 표현하는 좋은 이야기를 결합시킨 것들이 많다. 앞에서 얘기한 마이크 러보의 작품 Daisy는 성형수술의 역사와 오늘날의 현상을 그린 흥미로운 에세이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데이지라는 여성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그녀가 성형수술에 대해 갖고 있는 희망과 공포가 묘사되어 있다.
보다 광범위한 주제 -이를테면 1990년대의 범죄-를 다루어야 할 때는 나는 일반적인 것과 아울러 주제의 핵심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경우들을 살펴본다. 헬렌 휘트니는 그녀의 1978년 작품 Youth Terror에서 그런 방식을 택했다. ABC 방송사는 청소년 범죄라는 광범위한 주제를 주문했지만, 그녀의 작품은 뉴욕 브루클린 교외에 사는 청소년 집단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딜레마는 있다. 이야기식 작품과 탐사식 다큐멘터리 간의 풀리지 않는 갈등이 그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와 매력적인 인물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면 재미있는 작품은 되지만 보다 깊고 의미있는 정보가 희생될 수 있다. 때로는 멋진 이야기는 담고 있지만 작품의 폭이 너무 좁고 중요한 문제들이 피상적으로 처리된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사례 중심의 작품이 갖는 또 다른 문제는 관객들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좀더 균형잡힌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 이야기가 매우 특이한 것일 수 있다.
대부분의 작품은 열쇠 또는 손잡이, 즉 가장 흥미롭고 파격적이며 재미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시선을 필요로 한다. 열쇠는 조사를 통해 만난 인물일 수 있다. 이제는 문을 닫은 공장의 최장 근무자일 수도 있고, 실패한 전투에 참전한 군인 중의 한 명일 수도 있다.
열쇠나 손잡이에 관한 한 예는 내 작품 Part of Them Is Me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품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다양한 청년 마을들이 어떻게 이민 고아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고 새 땅에서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지를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좋은 주제이긴 하지만 지난 5년 간 이들 청년 마을에 관한 열 편 가량의 작품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조사 기간 동안 나는 이 마을에서 새로운 예술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한달에 한 번씩 음악 교사가 마을로와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음악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음악 교사인 데이비드가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서른다섯 살의 매우 권위적인 인물이었다. 나는 데이비드가 20여 년 전 바로 이런 마을에서 자랐음을 알게 되었고, 즉시 그를 작품의 열쇠로 삼았다. 그의 눈을 통해 작품을 만든다면 그의 유년의 기억과 교사로서의 경험을 통해 마을의 역사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원칙적으로 인물이 작품에 어떤 관점을 부여하는지를 살펴본다. 인물은 따뜻한 감정과 동정심, 동일시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들은 대부분 호기심이 많고 다른 사람의 삶과 그들의 사고방식, 일하는 방식, 그들의 문제와 성공 등에 간여하고 싶어한다. 인물들은 또한 사물을 관찰하고, 활동하고, 사건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작품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인물들은 허구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문제점과 실수를 통해 상황을 볼 수 있게 만든 회화적인 대상일 수도 있고 또 초인간적 능력을 지닌 사람일 수도 있다.
작품의 열쇠나 손잡이가 되는 것 외에도 선택된 인물은 무형식의 시사 사건을 다루는 작품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팸 예이츠(Pam Yates)와 톰 시겔(Tom Siegel)의 과테말라 내전을 그린 작품 When Moutains Tremble은 반란의 삶과 마을 주민의 경험, 희구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을 다루고 있다. 작품의 구성을 위해 감독들은 과테말라 인디언인
리고베르타 만추(Rigoberta Manchu)로 하여금 가족의 이야기들 하게 했다. 리고베르타의 모습은 교도소에서 촬영되었고, 작품 전체에서 불운한 가족의 이야기를 묘사하기 위해 네다섯 차례 등장한다. 그녀의 생생한 증언은 작품의 뼈대가 될 수 있었다.
등장 인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느슨하게 구성되어 있던 작품이 모양새를 갖추게 된 또 다른 예는 케바 로젠펠드(Keva Rosenfeld)의 American High이다. 이 작품은 놀기 좋아하는 캘리포니아 고등학생들의 생활을 묘사한 것으로, 무도회에서부터 파티, 학교 생활, 이혼에 이르는 모든 측면을 다루었다. 내용은 아주 재미있었지만 너무나 잘 아는 것이어서 흥미롭
지는 않은 주제였다.
그런데 이 작품을 살려내고 아주 흥미로운 것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일년 동안 이 학교를 방문한 핀란드 소녀의 시선이었다. 우리는 그녀의 미국식 규범과 행동에 대한 놀라운 반응을 추적했고, 그녀의 끊임없는 질문이 작품에 생명력과 탄력 그리고 색다른 시각을 제공했다.
이런 접근 방식의 문제점은 인물이나 주인공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는 속임수나 진부한 소리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작품들이 어느 노교수의 기억이나 베트남 참전 용사들의 고통을 바탕으로 함으로써 첫 장면부터 마음을 무겁게 가라앉히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작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런 속임수의 느낌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상황의 독특함에 빠져들게 한다.
적절한 열쇠만 찾으면 고민의 반은 이미 해결된 것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음악 그룹 위버스를 그린 짐 브라운의 작품 Wasn't That a Time을 생각해 보자. 브라운은 관심이 없는 외부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룰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위버스 그룹의 고참 멤버인 리 헤이스의 시선으로 이들을 그려냈다. 성미가 급하고 오만하며 대단한 매력과 유머를 지닌 남자, 헤이스는 이야기꾼의 역할을 맡았고 이로 인해 뛰어난 작품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작품의 주된 초점이 사람일 때 열쇠나 손잡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추상적 개념이나 건축, 특수한 역사적 시기, 또는 지리적인 장소를 다루는 작품의 경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 때 여러 가지 작품 아이디어를 상상력 없이 한데 묶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때로는 자료의 힘으로 인해 괜찮은 작품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러 가지 사실들이 논리적이긴 하지만 재미없는 순서로 연결되어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된다. 불행히도 여기에는 간단한 해법도 마술적인 공식도 없다. 당신은 작품마다 열쇠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러다 좋은 아이디어를 찾으면 그게 바로 해답이 되는 것이다.
메레디스 몽크가 엘리스 섬(Ellis Island : 이민자들의 미국 입항구)에 관한 기념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후원자들의 생각은 단순했다. 사실과 자료 사진, 기록에 기초한 역사 다큐멘터리를 만들되 여기에 현대적 감각을 약간 가미해달라는 것이었다.
몽크의 생각은 훨씬 더 상상적이고 수준이 높았다. 그녀는 기록을 포기하고 그 대신 춤과 짧은 예화를 사용해서 엘리스 섬의 역사적 분위기를 재창조 했다. 그녀는 현대적인 관광단이 엘리스 섬을 둘러보는 과정을 이용해 작품을 구성했다. 관광 중간중간에 그녀는 예고 없이 흑백 '엽서'들을 삽입했는데, 이것은 19세기 이민자들의 모습이라든가, 그리스 이민자들의 춤 또는 1920년대 영어를 배우려고 고생하는 여자들과 칠판에 '마이크로 웨이브'라는 단어를 쓴 교사의 모습을 담은 필름 스케치(몽크가 의도적의 제작한) 등이었다.
딱딱한 역사 기록이었다면 관객들이 지루해 했겠지만, 실제로 관객들은 그 장소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포착한 뛰어난 다큐멘터리에 찬사를 보냈다. 감독이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을 선택하는 수고를 함으로써 잠재적인 실패 요인을 성공으로 바꾼 사례였다.
일전에 나는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호수 근방 - 너무나 아름답고 역사적•성경적 유적과 현대의 발전으로 인해 관심이 집중된 지역이었다 - 에 관한 작품 요청을 받았다. 폭넓은 가능성을 지닌 작품이었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 때 호수 주변을 도는 정기 마라톤 대회를 생각해 냈다. 그것은 분명한 열쇠였다. 마라톤은 작품에 긴장감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참가자들을 따라가면서 역사적 상황이나 내가 다루고 싶은 주제를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쇠를 찾는 것은 힘든 일이고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연 이 작업은 가치 있는 일일까? 물론이다.

구성

구성의 문제는 다큐멘터리에 관한 논의에서 상당히 무시되어 왔다. 단편의 경우는 좀 다르다. 후자에 대해 윌리엄 골드만은 "구성이 전부다."라고 썼고, 단편 영화에 관한 책마다 구성을 강조하고 때로는 3막 드라마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다큐멘터리는 단편 영화와는 아주 다르지만 나는 (골드만도 마찬가지로) 구성이 훌륭한 작품 제작의 핵심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구성이 없이 방만한 채로 가끔씩 흥미로운 인터뷰나 눈길을 끄는 사건을 뼈대 없이 보여주는 작품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 작품에는 재미있는 내용은 있을지 모르지만 어딘지 뭔가 빠진 느낌이 든다. 모든 좋은 책과 연극에 구성이 필요하듯이 다큐멘터리 영화도 마찬가지다. 흥미롭고 잘 만들어진 이야기와 만족할 만한 결말을 이끌어 내는 흐름과 리듬이 반드시 제시되어야 한다.
구성을 자연스러운 것 또는 창조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초기부터 자연스러운 것 또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구성, 자료에 의해 움직이는 구성을 찾아야 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자료의 속성에 의해 절대적으로 두드러지는 형식 그리고 너무나 강력하고 명확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단 한 가지 방식처럼 보이는 형식이다. 그러한 구성을 찾는 것은 어쩌면 신으로부터의 선물일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의 전형적인 예는 시네마 베리테 운동 초기에 만들어진 드류(Drew) 영화사의 작품들인 The Chair, Jane 그리고 On the Pole이다. 이들 작품은 인생의 전환기에 놓여져 있는 사람들에 관한 것으로, 그들이 마주한 위기와 문제가 해결된 두의 결말을 다루고 있다.
The Chair는 돈 펜베이커(Don Pennebaker)와 리키 리콕(Ricky Leacock)이 감독한 작품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흑인 폴 크럼프(Paul Crump)의 닷새 동안의 삶을 그렸다. 제작 당시 폴은 요양소로 이송되었지만 며칠 후 사형집행을 앞두고 있었다.
영화는 그의 변호사가 감형을 위한 마지막 항소를 준비하는 것을 뒤쫓는다. 우리는 감옥 속의 폴 크럼프를 볼 수 있고, 그가 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그의 변호사가 공적이고 사적인 행동들을 취하는 것을 볼 수 있고, 가톨릭 교회에서 그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촉구하는 것을 알게 되며, 또한 전기 의자를 점검하는 간수도 보게 된다. 작품에 긴장감을 주
는 것은 최종 결정이 몇 시간 안에 내려진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긴박감은 최종 결정일에 최고조에 이르다. 폴 크럼프의 사형은 유보되고, 그는 다른 감옥으로 이송된다.
Jane은 돈 펜베이커의 1962년 작품으로, 참패할 것이 분명한 브로드웨이 연극을 준비하는 제인 폰다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외적•내적 어려움을 보게 되고, 몇 주간의 연습과정, 개막일의 긴장감 등을 보게 된다. 다음날 아침 일직 신문에 실린 비평은 최악이었다. 연극은 곧바로 막을 내렸고 배우들은 흩어졌다. 이 작품은 The Chair와 마찬가지로 갈등의 시작에서부터 피할 수 없는 절정에 이르는 과정을 뒤쫓고 있다.
드류 영화사의 작품 대부분은 '위기 구성'이라고 불리는 문학 및 희곡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장치를 단편 영화에서도 친숙하게 보아왔지만 그런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효과적이다. 또 하나의 기본적인 구성 장치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내의 커다란 변화라는 원칙에 기초하는데, 그러한 변화는 흥미로울 뿐 아니라 극적이기도 하다.
아이라 월(Ira Wohl)의 Best Boy는 그런 유형의 좋은 예로, 아이라의 사촌인 필리의 2년 간의 삶을 다루고 있다. 필리는 여섯 살의 지능을 가진 52세의 남자이다. 필리의 부모가 항상 그를 돌봐 왔지만 이제 그들도 70년 후반이다. 부모의 사망 이후 필리의 미래를 걱정한 아이라는 필리를 정신지체아 학교에 입학시키는데 거기서 약간이나마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필 리가 독립심과 자신감을 얻어가는 과정에 대한 놀라운 연구이다. 변화라는 주제는 작품 초기와 마지막 장면의 대조를 통해 부각된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필리의 수염을 깎아 주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자신이 직접 면도를 한다.
변화를 묘사하는 이런 능력은 다큐멘터리의 장점 중의 하나이다. 이런 과정은 관객들을 매혹시키고, 자연스럽고 흥미로운 상황을 찍은 경우 그 효과는 대단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는, 마이클 앱티드의 영국 어린이들에 관한 뛰어난 연작, Seven Up으로부터 Thirty Five Up까지이다. 이 시리즈의 각 작품은 스물여덟 살이 넘은 열 몇 명의 남녀의 삶과 성장 과정을 어린 시절부터 30대 중반까지 7년 간격으로 묘하고 있다. 이 영화들은 희망과 기대가 각 사람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그린 감동적이고 재미있으며, 슬프고, 날카롭고, 영감이 풍부한 작품이다.
나 역시 변화 과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1980년 2년 간의 군복무를 앞둔 젊은 이스라엘 여성에 관한 텔레비전 작품의 제안서를 쓴 적이 있다. 제안서에서 나는 기본 훈련을 받는 세 명의 여성을 그리겠다고 제안했다. 한 명은 부유한 도시 집안 출신이고, 또 한 명은 시골 출신 그리고 세 번째는 최근에 이민 온 여성이었다.
나는 그들이 군에 입대하기 전 그들이 미래에 대해 갖고 있는 희망과 불안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입대 후 5, 6 주 동안 그들을 뒤쫓을 생각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집에서 멀리 떠나 군대라는 쉽지 않은 환경에 놓여진 그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었다. 군대라는 배경은 무척 매혹적이었고, 이 여성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흥미로운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이 작품이 분명한 구성을 가졌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첫 부분은 입대 전의 기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기다림, 희망, 불안 그리고 준비. 두 번째 부분은 첫 두 주간의 도전과 충격의 기간을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주인공들이 짧은 휴가기간을 갖게 되고, 네 번째 파트에서는 기본 훈련을 끝내고 자대로 배치받는
것을 그릴 생각이었다. 주제도 흥미로웠고 제안서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텔레비전 기술자들이 파업을 일으켰고, 파업이 끝나자 예산 절감으로 인해 제안서는 무시되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겪는 더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명확한 접근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구조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에 관한 훌륭한 열쇠를 찾았다고 해도 이런 문제를 만날 수 있다. 앞 장에서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대학을 묘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대학에 관한 작품의 제안서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런 종류의 작품에는 자연스런 구성이란 게 없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든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찌됐든 나름대로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도입부에는 두 명의 학생과 두 명의 교수, 한 명의 교직원을 중심으로 인간적인 접근 방식을 선택하여 대학에 관한 이들의 대조적인 시각을 보여 주기로 했다. 이들이 작품을 끌어가면서 지속적이고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인물로 정착될 수 있는 반면, 작품은 또 다른 방식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대학에서의 하루를 중심으로 풀어나갈 수도 있고, 또는 중요한 대학행사나 강의, 스포츠 대결, 시험, 졸업식 등을 다룰 수도 있다.
또 다른 방식은 기금 모금 영화에 어울리는 것인데, 동문의 날 행사를 통해 대학의 과거와 현재를 대비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작품은 행사 준비로 시작해서 전형적인 신입생과 졸업생 그리고 동문을 묘사하고,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룬 뒤 모든 인물들이 등장하는 동문의 날 무도회로 끝맺을 수 있다.
작가와 감독만 괜찮다면 이런 접근 방식들은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삶의 하루'라는 구성 방식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런 방식이 Rien que Les Heures나 Berlin과 같은 1920년대 작품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매우 신선했지만, 그 이후로는 너무나 많은 인생의 너무나 많은 날들이 다루어져 온 것이다. 이제 이런 방식은 주의깊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이것이 여전히 효과적인데 리처드 코스턴이 BBC를 위해 만든 Royal Family가 그러하다.
Royal Family는 영국 왕족에 관한 해설 영화인 동시에 영국 의회 내의 왕정의 기능에 관한 에세이 영화이기도 하다. 작품의 형식은 매우 단순하다. 첫 부분에서는 여왕의 전형적인 하루를 묘사하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그녀의 전형적인 한 해를 다룬다. 구성이 대단히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적절했고, 그게 중요한 점이다. 여왕의 삶, 특히 사생활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구성을 사용한 작품의 예라 할 수 있다.
아주 느슨하고 모호한 내용으로부터 훌륭한 구성을 해낸 작품의 또 다른 예는 캐나다 국립영화사의 City of Gold로 콜린 로우, 울프 쾨닉, 로만 크로이터가 피에르 버튼의 자문을 받아 만든 작품이었다. 1956년 로우는 자료 조사중 1898년 금광 열풍의 중심지였던 도슨시를 찍은 헤이크의 사진들을 발견했다. 크로이터와 쾨닉과 함께 로우는 이 사진을 바탕으로 도슨 시에 관한 작품을 기획했고, 여기서 당시 사람들의 모든 삶의 담기로 했다. 그런데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감독들과 작가의 결정은 환상적이었다. 영화는 현재에서 과거로, 그리고 다시 현재로 움직이면서 하나의 원을 돌면서 완성된다. 초반부 오늘날의 도슨 시 장면에서 우리는 작은 식당과 여기에 모여 있는 노인들, 그리고 공원에서 야구를 하는 어린 소년들을 보게 된다. 거기서부터 카메라는 우리를 과거의 풍경으로 데려간다 - 낡은 엔진, 버려진 배, 판자로 막혀진 창문 - 그리고 해설은 이것들이 모두 새 것이었던 시절을 회상한다.
거의 눈치채지 못하게 장면은 현재의 사진에서부터 헤이그의 사진에서 보았던 과거로 넘어간다. 전환 장면은 금광업자들이 도슨 시로 향하기 전 정복해야 했던 음울하고 온통 얼어붙은 칠쿳 고갯길 장면이다. 처음에 우리는 고갯길을 실제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카메라가 금광업자들의 모습을 비추면 그것이 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은 사진을 이용해서 도슨 시와 황금에 미친 광부들의 광적인 삶으로 향하는 여행을 회상한다. 우리는 황금이 발견되는 과정과 운좋은 사람들과 절망한 사람들의 운명을 보게 된다. 또 기마경관과 창녀들, 바텐더, 도슨 시의 축제들을 볼 수 있다.
그 다음엔 거의 눈치채지 못하게 영화는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가는데, 우리는 오늘날의 도슨 시로 돌아와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된다. 영화는 거의 첫 장면의 반복처럼 보이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소년들은 여전히 야구놀이를 하고 노인들은 아직도 발코니에서 담소를 나눈다. 그러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우리는 꿈에서 깨어났지만 이제 우리의 의식은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매우 효과적인 결말 이사이었다. 현재로의 귀환은 원을 완성하고, 우리는 완벽한 구성이 이루어졌음을 느끼게 된다.
작품에 대한 단 하나의 완벽한 접근 방식이란 것은 없다. 모든 종류의 아이디어가 당신의 목적을 채워 줄 수 있다. 때로 나는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두세 가지의 아이디어를 놓고 서로의 장단점을 비교하면서 시간을 끈다. 다른 방식을 생각하는 것은 단지 지적 놀음이 아니라 각 방식의 문제점을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얼마 전 두 단체로부터 2년 연속으로 비슷한 주제의 작품 요청을 받았다. 각 단체는 병원을 지원하고 있었고, 내게 기금 마련을 위한 작품을 의뢰했다. 나는 일주일 간의 조사작업을 통해 첫 작품의 열쇠를 찾아냈다. 내가 다룰 병원은 다소 우중충하고 낡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 지역인들이었지만 약 15명의 외국인 의사들도 있었다. 나는 그것이 열쇠라
고 생각했다.
나는 두세 가지 아이디어를 놓고 씨름하다가 마침내 이 작품의 가장 좋은 접근 방식은 북미에서 온 세 명의 외국인 의사들을 다루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중 한명은 뉴욕의 마운트 시나이 병원에서 근무한 베테랑 의사로, 그곳에서 연봉 20만 달러를 받았다. 두 번째 의사는 피닉스에서 온 노인병 전문의 중년 의사였고, 세 번째는 토론토에서 순환근무를 위
해 파견된 젊은 의사로, 가정의를 지망하고 있었다.
처음 몇 주 동안의 조사 과정에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많은 질문이 내게 떠올랐다. 이 의사들은 왜 좋은 자리를 버리고 영국으로 와서 이런 낡은 병원에서 일하게 된 걸까? 그들은 일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병원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전반적인 도전이 낮은 봉급과 열악한 시설을 보상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거기서부터 일은 순조롭게 풀렸다. 나는 그들에게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했다. 왜 왔으며, 무엇이 그들을 이끌었는지, 왜 이 병원에 대해 열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사들은 매우 친절하고 호의적이었으며, 나는 그들의 이야기와 헌신이 후원자들의 기부를 끌어낼 것을 기대했다.
열쇠를 찾기만 하면 작품의 구성은 아주 쉬운 문제였고, 우리는 작품의 제목을 Because We Care로 정했다. 첫 부분은 병원에 도착한 의사들이 일과를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는 의사들을 소개하고 병원과 환자들에 대한 전체적인 분위기를 전달했다. 중간부분은 숨을 돌리는 의미에서 그들의 사생활을 다루었다. 우리는 그들이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 쇼핑을 하거나 캠핑을 하는 모습을 찍었다. 세 번째 파트는 심각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의사와 환자 간의 관계를 좀더 깊숙히 다루었다.
마지막은 시설 확충과 새 병원 건물에 대한 계획을 잠시 보여 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여기에는 병원장이 등장해서 카메라에 대고 직접 이야기를 한다. 그의 임무는 지금까지 암시적으로만 묘사했던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즉, 병원은 환자들을 진심으로 돌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조사작업 중에 계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노골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전 장면들을 통해 감독의 느낌에 대한 충분한 단서가 제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Because We Care는 해설자가 없이 순전히 현장음으로만 만들어졌다. 내 두 번째 병원작품인 For the Good of All은 해설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효과적이었다. 이것은 불과 일년 뒤에 만들어졌고, 역시 기금 마련의 목적을 갖고 있었지만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후원자는 조사와 교육 그리고 봉사를 다룬 작품을 원했다. 나는 그것이 너무 광범위한 주제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봉사와 치료에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했다.
후원자와의 몇 차례 논의를 거쳐 우리는 네 가지 분야를 다루기로 했다. 종양학, 신생아 간호, 시각 수술 그리고 심장학. 그러나 여전히 접근 방식과 형식의 문제가 남기 때문에 나는 후원자에게 환자의 시선으로 병원을 바라볼 것을 제안했다. 환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자신의 병과 병원의 치료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를 밝혀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자료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고 느낀 나는 몇 개의 기본적인 장면에 포함될 해설을 썼다.
얼마간 작업을 해본 뒤 나는 이 방식이 옳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을 뭔가가 필요했다. 해답은 아이작 스턴과 장 피에르 랑팔이 출연하는 야외 콘서트를 삽입하는 방식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장면은 별개의 이야기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작용을 했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오케스트라가 대포 소리 들리고 폭죽이 터지는 1812년 서곡을 여주할 때 작품 속에 등장했던 환자들이 야외 관중들 중에 앉아 있는 신이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의도적인 것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환상적이고 활기찬 느낌을 마지막에 불어넣었고, 후원자들도 이를 좋아했다.

스타일과 상상력

네 남자가 언덕 위에 있는 한 여성을 보고 동시에 사랑에 빠졌다. 네 사람 모두 그녀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싶어했다. 한 명은 편지를 써서 언덕을 걸어올라가 그녀의 발 앞에 편지를 놓았다. 두 번째 남자는 그녀에게 달려가 꽃을 바쳤다. 세 번째 남자는 물구나무를 선 채 그녀를 위해 춤을 추었고, 네 번째는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매단 비행기를 전세 냈다. 각자 모두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인 셈이다. 한 사람은 사려깊고 신중했으며, 또 하나는 역동적이었다. 세 번째는 희극적인 시도를 했고, 네 번째는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했다.
스타일은 사랑에서뿐 아니라 다큐멘터리에서도 중요하다. 직선적이든, 희극적이든, 또 세련되고 환상적이든 당신이 원하는 어떤 방식도 좋다. 말하자면 당신이 가고자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스타일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지루함이나 진부한 대화, 알쏭달쏭한 이야기 그리고 질질끄는 잡담 등은 주의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지루한 것과 동일시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데 있다. 1980년대에는 다큐멘터리들의 형식이 한 가지 방식으로 굳어졌는데, 즉 너무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지나치게 딱딱했다.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로 모든 다큐멘터리들이 그럴 필요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다큐멘터리에는 전형적인 형식이 있다고 믿는 듯하다. 틀린 생각이다. 스타일(그리고 다른 많은 부분에 있어서도)에 관해 당신이 가져야 할 생각은 미리 정해진 신성한 다큐멘터리 제작 방식이 따로 있는게 아니란 것이다. 그리어슨 그룹은 1930년대 편집과 음향에 관한 실험을 통해 다큐멘터리의 혁명을 이룩했을 때 이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류, 리콕, 와이즈만, 라우치 등은 30여 년 후 시네마 베리테에 대한 그들의 아이디어로 다큐멘터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을 때 이 점을 이해했다.
최근에 엘렌 브루노(Ellen Bruno)의 놀라운 작품 Satya : A Prayer for the Enemy는 어떻게 시적이고 서정적인 영상 스타일이 가장 어려운 주제인 정치적 작품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또 다른 차원에서 흑인 동성연애자의 문제를 다룬 말론 릭스의 Tongues Untied는 어떻게 연극적 요소와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기술이 함께 융합되어 인종과 성적인 관용에 대한 강력한 호소를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먼저 당신의 스타일에 어느 정도의 자유를 부여하라. 유일한 장벽은 당신의 상상력임을 기억하라.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택하고 있는 스타일은 직선적이고 현실적이며 산문적이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라. 당신은 환상과 유머, 풍자, 패러디 등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이 후자들이 그렇게 좋다면 왜 산업이나 교육 다큐멘터리에서 좀더 광범위하게 사용되지 않았을까? 한 가지 대답은 너무 많은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뉴스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요구하고 창의적인 풍자나 유머에는 얼굴을 찌푸린다는 데 있다. 나는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하며, 그들이 강요하는 한계는 재고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상상력은 아주 진부한 주제에도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당신이 엄청나게 많은 도구들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큐멘터리는 반드시 현실이나 기록 또는 사진을 바탕으로 한 연대기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내게는 넌센스로 들린다. 만일 극적이거나 환상적인 연대기를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몇 년 전 칼 사강의 저명한 작품 코스모스 Cosmos는 감독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제작기법을 사용했다. 첫째, 이 작품에서는 미래의 우주선을 위한 통제실을 고안해서 그것을 작품의 주요 무대로 사용했다. 이 통제실에 앉아서 사강은 다른 세상을 내다보았다. 이 시리즈는 통제실과 실제 장소, 컴퓨터 그래픽, 모델, 극적 재현 그리고 기록 필름 사이를 오가며 제작되었다. 원칙주의자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만 활력과 치장을 곁들인 이 시리즈는 미국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상상력과 적절한 예산으로 다큐멘터리가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시사 다큐멘터리를 선호하는 미국 상업 방송은 불행히도 다큐멘터리 작가들과 감독들을 아주 평이하고 사실적인 스타일로 묶어 두는 경향이 있다. 때로 작가들은 이런 제한에 반기를 들고 방송사들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런 작가 중의 하나가 아서 바론으로, 그가 CBS Reports용으로 만든 작품 The Berkeley Rebels의 스타일과 상상력에 대해 나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분석이나 객관적인 보도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학생들의 세계를 가능한 한 역동적이고 강한 톤으로 다루고 싶었다. 오랜 논의 끝에 CBS는 이런 접근 방식에 동의를 했다. 작품은 여러 가지를 함께 섞어 놓았다. 한편으로는 단순하게 일기식으로 사람들을 묘사했다. 그러나 특별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장면을 구성했다. 예컨대 나는 '사실들, 사실들, 사실들!'이라는 시퀀스를 만들었다.대학에 관한 비판 중의 하나는 학생들이 정보와 사실들은 공급받지만 지혜나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들'은 바로 이 점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비누 거품이 가득한 욕조를 만들었고, 그 아에서 갑자기 커다란 털투성이 학생이 물을 뚝뚝 흘리며 등장한다. 그는 카메라르 보면서 "직삼각형 빗면의 제곱근은 어쩌구 저쩌구…."라고 말한 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한 학생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언덕을 내러오다가 카메라 옆을 지나면서 "아테네 전쟁이 일어나 연도는…."하고 외친다. 또 하나의 그런 예는 개를 데려다가 씹는 사탕을 먹였다. 개가 씹는 모습이 마치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독일 악센트를 가미한 목소리를 입혔다.

바론이 가미하고자 한 이런 작은 시도들은 매우 재미있었지만 그의 표현대로라면 'CBS 방송사를 펄쩍 뛰게' 만들었다. 결국 방송사는 '사실들' 장면과 개 장면을 삭제했다. 유머와 상상력은 그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요소였던 것이다. 다행히 BBC는 언제나 실험정신에 개방적이고 최근 BBC가 후원한 가장 훌륭한 예는 토니 해리슨과 피터 사임스의 The Blasphemers' Banquet이다.
이 작품은 아야톨라 호메이니와 모슬렘 근본주의에 대한 혹독한 비판으로 아이디어와 해설 모두가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품의 전략은 당신을 시인 해리슨과 함께 만찬에 초대하는 것이다. 테이블에는 오마 카얌, 볼테르, 몰리에르, 바이런 그리고 샐먼 루시디가 앉아 있다. 이들은 세상을 종교적 암흑으로부터 빛으로 밀어내는 용기를 지닌 '모독자'들이었다. 해리슨
은 이들 각자의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고, 카메라는 연극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파리의 데모, 경매장, 고함치는 정치인, 호메이니의 장례식 그리고 루시디의 인형을 불태우는 근본주의자들의 집회들을 비춘다. 가끔씩은 만찬이 열리고 있는 조그만 카페 오마 카얌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근본주의자가 점차 강해지고 있는 오늘나르이 브래드포드 시를 바라보기도 한다.
전체 내용을 연결하는 핵심은 토니 해리슨의 해설로, 이것은 아주 위트 넘치는 운문으로 씌어졌으며 모든 종류의 종교적 근본주의에 대한 혐오를 건조하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잠깐만! 운문과 시를 다큐멘터리에 쓰다니… 그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맞다.
운문은 이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함 자체가 만찬의 아이디어와 작품의 유머와 함께 어울려 우리가 흔히 보아온 대부분의 정치적 다큐멘터리보다 훨씬 더 강하고 효과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많은 텔레비전 방송사 간부들과 후원자들의 문제는 상상력과 유머가 다큐멘터리에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아마도 그것이 생기가 빠져 있는 다큐멘터리가 많은 이유일 것이다.결국 그 간부들의 생각은, 심각하고 중요한 주제는 무겁고 딱딱한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큐멘터리가 됐든 일반 영화가 됐든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DR. Strangelove는 뛰어난 풍자임과 동시에 핵 문제에 대한 끔찍한 경고를 제시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유머는 가장 심각한 다큐멘터리에도 생명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작품이 제 풀에 지나치게 심각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유머를 통해 주제가 살아난 가장 좋은 예는, 제임스 버크가 BBC 방송용으로 만든 Connections란 시리즈이다. 이 작품은 기술의 역사에 관한 것으로 모든 이야기의 주제를 매우 낯설고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버크의 유머 감각은 그의 무심하게 던지는 듯한 해설과 대본에 삽입한 영상 조크 모두를 통해서 드러난다.
시리즈 중의 한 편인 Distant Voices에서 그는 전기에 관한 초기 실험을 소개한다. "쾌활한 프랑스 수사 놀레는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전기에 관한 개인교습을 하고 있었는데 여러 수도승들을 상대로 몸이 붕 뜨는 경험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는지 충전해 보기로 했다. 효과가 있었다!" 해설과 함께 화면에는 여섯 명의 수도승들이 서로 손을 잡고 전기 항아리로부터 전기 충격을 받는 모습이 그려진다. 충격이 가해지면 수도승들은 아주 엄숙하고 느린 동작으로 아래 위로 뛰는데 마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그 장면이 유쾌해 보인다.
많은 단편 영화들이 위트의 전략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다큐멘터리에도 아주 잘 어울린다. 1982년 나는 스포츠에 관한 텔레비전용 저예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스포츠 조사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정보와 동작이 많았지만 뭔가 독립적인 내용들을 묶어 줄 것이 필요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약간 뚱뚱한 내 친구의 도움을 얻어 네다섯 장면을 써넣었다.
첫 장면에는 그가 텔레비전만 시청하는 열성적인 축구팬으로 등장한다. 나중에 자동차 경주를 다루는 장면에서는 그가 차 안에서 핸들과 씨름하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보게 된다.
줌을 통해 우리는 차가 트럭에 의해 견인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또 다른 장면은 마라톤 선수들을 비춰 주는데 지친 데이브가 헐렁한 반바지를 입고 히치하이크를 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이것이 아주 훌륭한 위트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작품의 성격에는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그 외의 효과도 있었다. 우리에게 스포츠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메시지를 소리없이 전달한 것이다.
로스 멕켈위의 1986년 작품 Sherman's March 역시 이런 익살을 사용하되 약간 다른 방식을 택했다. 작품의 구실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를 가로지른 셔먼의 파괴적인 횡단에 대한 조사였다. 실제로 이 작품은 남부 여성들의 사랑과 성을 그리고자 한 맥켈위의 의도를 매우 개인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따라서 작품의 주된 내용은 낯설고 멋진 여러 여성들과 맥켈위의 만남을 뒤쫓고 있지만 때로는 익살을 통해 작품의 심연을 건드리기도 한다.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셔먼의 횡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상상력과 유머는 영화의 어색한 부분을 처리하는 데 상당히 유용한 요소이며, 전체 화면에 정보를 제공할 때 놀라운 역할을 수행한다. The Road to Wigan Pier에서처럼 이렇게 되면 평범한 작품이 예술작품으로 변하기도 한다. 프랭크 츠비타노비치가 테임즈 텔레비전을 위해 만든 The Road to Wigan Pier는 1930년대 노동과 광업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조지 오웰의 동명 소설에 기초한 것이다. 제목에서 그리고 오웰에 대한 사전지식으로부터 우리가 예상한 것은 오웰의 소설에 기초해서 광부들과 탄광, 공장들, 빈민가들을 다룬 심각한 역사 다큐멘터리였다. 작품의 전반부는 거의 정확하게 예상대로 였다.
내가 '거의'라고 한 것은 츠비타노비치가 작품의 느낌을 바꾸는 두 가지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예상에서 빗나간 첫 부분은 자료 필름 사이에 끼워넣은 6, 7 개의 노동가요였다. 상이한 광산 지역에서 영국 전통가수가 부른 노래들은 오웰의 소설 내용에 대한 코믹한 접근이었고, 이 작품을 역사 연구가 아닌 뮤지컬 다큐멘터리로 바꾸어 놓았다.
두 번째 놀라움은 작품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우리는 1930년대의 역사를 보면서 이 작품이 유럽에서의 전쟁 발발과 함께 한 세대가 마감되는 것으로 끝맺을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이 예상은 해설자의 갑작스런 질문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오웰 씨, 사회주의에서 당신의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죠?" 장면은 갑자기 현대적인 그러나 텅 빈 텔레비전 스튜디오로 바뀐
다. 그때 가수가 등장해서 텔레비전 조종실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모니터가 깜빡거리면서 볼드윈과 체임벌린 그리고 처칠과 윌슨에 이르는 여러 명의 영국 수상들이 화면에 등장한다. 한 명씩 한 명씩 선거 유세에서 그들은 영국의 번영과 영광스런 미래를 공약한다.그러나 자료 화면은 당혹스런 방식으로 편집되어 있다. 한 정치가가 "영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다른 정치가가 또 다른 화면에서 "쓰레기 같은 것들!"이라고 응대한다. 노동당 출신 수상이 노동자의 지위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말하면 보수당 수상이 "돼먹지 않은 넌센스"라고 대답한다.
마지막으로 해럴드 윌슨이 영국의 새 예루살렘에 대해 이야기할 때 편집된 장면은 "입 닥치고 허리띠 매고 집으로 가라."는 에드워드 히스의 반응이다. 이것은 아주 재미있고 풍자적인 장면으로, 여기에 가끔씩 헝겊 모자를 쓰고 화면 속의 이 모든 정치적 설전을 바라보며 씩 웃는 가수의 모습이 겹친다.
또 갑자기 화면이 바뀌면 가수는 컴퓨터와 빙빙 도는 디스크들이 놓여진 끝없는 복도를 달린다. 그가 멈춘 곳에서 컴퓨터는 돌아가고 기계는 카드를 뱉어 놓고, 여러 가지 익명의 목소리들이 1970년대 산업과 노동의 당혹스런 현실을 보여 준다. 이는 결국 오웰의 시대로부터 달라진 것은 거의 없음을 암시한다. 이 마지막 아이디어는 탁월한 것으로 웬만큼 관심을 끌 만한 괜찮은 다큐멘터리를 현대 영국에 대한 아주 강력한 도전 작품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례들

자동차와 그 기능에 대한 스튜어트 후드의 작품 Crisis on Wheels는 또 하나의 아주 흥미롭고 상상력 풍부한 다큐멘터리이다. 이런 주제의 경우, 감독은 전형적인 함정에 빠지고픈 유혹으로 대량생산이나 자동차 경제학, 자동차 디자인, 사고 예방 그리고 판매 등에 관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후드는 이런 부분에서 비켜서서 작품을 차에 관한 대여섯 편의 약간 엉뚱한 에세이로 만들어 놓았다.
첫 부분은 차를 숭배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부분을 발췌해 보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집 중의 집, 자동차'라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런던 근교의 점차 악화되고 있는 교통 정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교통정체에 대해 점점 속수무책이 되어가는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 후드는, 교통정체가 당연시되고 몇 주씩 차 안에 묶여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무대는 윈저성 근처의 중소 도시인 슬라우 시이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상 부분은 윤곽만 묘사했으나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뛰어난 작품이며, 다시 한번 위트와 상상력이 작품의 주제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 준다.
내게 계속적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또 하나의 작품은 Bakeley in the Sixties이다. 작품이 훌륭할 뿐 아니라 그 혼란기에 스탠포드의 대학원생이었던 오래전의 추억을 불어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재판을 준비하면서 BITS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스티브 모스트를 만나게 되었다. 스티브는 해설을 쓰는 작업을 했는데 저녁을 먹으면서 완성된 작품의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야기했다. 형식과 구성의 무제가 이 책의 핵심주제이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의견을 몇 자 적어넣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다음은 스티브가 그 후에 내게 보낸 편지이다.

Bakeley in the Sixities는 영화감독 마크 키첼의 7년 간의 방랑기입니다. 그는 자료 필름을 모으고 1960년대를 대표하는 사건에 참가한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자료를 연결하는 것은 주제였고, 마크는 이것을 연대기적으로 접근했죠. 하지만 이런 사건들 - 말하자면 언론자유운동, 반전 운동, 블랙 팬더, 히피의 등장, 레이건의 부상, 국민의 공원 등-은 종류나 느낌에서 매우 다릅니다.
마크가 내게 해설 대분을 써보라고 했을 때 내가 처음 본 초벌 필름에는 여러 에피소드를 연결하는, 회상이 아니라, 인물이 없었어요. 이야기도 없었고 통일된 주제도 없었죠. 게다가 에피소드들은 아주 절망적인 느낌을 전해 주고 있었습니다. 자유언론의 승리에 대한 환호에 이어 한 명이 레이건 주지사에게 완전한 승리를 안겨 준 국민의 공원 운동의 실패를 다루고 있었어요. 왜 관객들에게 '1960년대'가 실패였고 - 물론 실패도 있었지만 - 그 세대가 얻은 것은 현실에 바탕을 두지 못한 환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하나? 이 작품의 관객은 누구이며, 또 이 작품에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 걸까?
나는 이 생각을 마크 키첼과 조감독 케빈 페나 그리고 편집감독 베로니카 셀버에게 전했습니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동의하더군요. 그리고 나는 이 문제의 해결방법을 알았기 때문에 이 일을 맡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1960년대 버클리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의 이야기였습니다. 따라서 해설자로는, 그 당시 현장에 있었고 그 세대의 대변자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언론자유운동의 참가자였으면서 이 작품의 해설자였던 수잔 그리핀의 이중 역할은 결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처였죠. 1960년대가 획득한 정치적 경험은 끈질기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 중 어떤 부분은 1970년대까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여권 운동 같은 거
죠. 여성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자유와 능력을 느낄 수 있었고, 세상은 바뀔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이를 위해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바로 여기에 세대 간의 의사소통이라는 이 작품의 주제가 있어요. 우리는 세상을 좀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을 만큼 했고, 우리가 이루려던 것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세대도 혼자서 그 일을 할 수는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경험에서 배워 계속 그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작품을 진행하면서 나는 내가 극적인 이야기를 쓰는 희곡작가로서 배웠던 기술을 다큐멘터리라는 매체에 적용시킨 겁니다. 극작가들이 사용하는 한 가지 방법은 작품을 극적 구도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크 키첼의 생각은 도입부를 1950년대에 관한 해설로 시작해서 다음에는 대학의 분교에 관한 클라크 커의 강의를 소개하려고 했지만 나는 좀더 효과적인 것을 원했어요. 이를테면 1969년 샌프란시스코 시청 계단에서 물세례를 받았던 결과적으로 '정치적 세례'였죠, 반 HUAC 데모대 같은 겁니다.
키첼 감독이 관객들의 반응을 실험해본 뒤 이것이 작품의 도입부로 선택되었고, 감독도 설교 형식보다는 극적인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BITS의 해설은 세 사람의 공동작업이었습니다. 감독은 초안의 일부를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 내가 쓴 것을 비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해설자인 수잔 그리핀은 화면이 결정된 뒤 시인으로서의 그녀의 목소리에 가장 잘 어울리고 역사의 목격자로서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선택하는 일에 참여했죠. 편집감독은 간접적인 도움을 주었는데 우리의 생각을 진전시키는 논의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결과에 만족했습니다.

스티브처럼 나도 작품의 형식에 관한 비슷한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그를 만나기 몇 달 전의 일이었다. 1992년 12월, 이스라엘 외무성이 정정협정 이후의 중동에 관한 작품제작을 공고한 적이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PLO 간의 오슬로 협정이나 제리코와 가자의 귀환이 있기 훨씬 전이었고, 작품의 주제는 그에 대해 상당히 희망적인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었
다. 나는 제안서를 내기로 했는데 작품의 접근 방식과 표현법에 대해 상당히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야 했다.
문제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있었다. 나의 첫 번째 작업은 여러 주제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경제 발전, 농업, 관광, 수자원, 무기 제한, 피난민 등등이었다. 이것은 쉬운 작업이었다. 문제는 작품의 창의성 있는 구성틀을 입히는 일이었다. 이것은 단지 전문가의 의견이나 권위에만 의존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해답은 작품의 배경을 미래 즉 서기 2004년으로 설정하고 기자가 과거 10년 간의 평화 시절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기자는 실제로 사막에 파견되어 첫 평화협정 10주년 축하행사를 취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행사를 기다리면서 그는 과거 10년 동안 일어난 일들을 회상한다. 사건들은 다큐멘터리와 가짜 뉴스 화면 그리고 극적 재현 등을 통해 화면에 '재창조'된다. 다음은 작품의 첫 부분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이 지역의 전쟁과 전투의 역사(자료 필름을 사용해서)를 약간 돌이켜본 뒤 환상적 다큐멘터리로 넘어간다. 나는 즐겁게 대본 작업을 했고, 제안서는 크게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후원자는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다. 너무나 논란이 많은 주제였던 것이다. 좋은 대본이지만 아마도 '다음' 해에나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일이란 게 늘 그런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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