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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
 작품정보 : 김동원 / 2001년 / 50분

음악 : 김동범

조연출 : 박일헌

연출  : 김동원

 

 

#.시놉시스

  서로베르토 신부는 한국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많은 외국 선교사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1964년 29세의 나이에  한국에 와서 2000년 7월 65세를 일기로 작고하실 때까지 그는 가난과 독재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주변에서 철저히 민중들과 함께 했다. 그의 학식은 맑스와 트로츠키에 정통하고 한문과 산스크리스트어를 공부해 노자와 불교서적을 원전으로 볼 정도 풍부한 반면, 철저히 가난정신을 실천하여 한가지 옷, 신발로 몇 년씩을 버티는 괴력을 지녔고 신부라는 권위가 거추장스러워 로만 칼라를 안하고 다녔고 길거리에서 천 원짜리 햄버거를 사먹고 다녔다. 한편으론 유머가 풍부해 늘 주변사람들을 웃겼고 돋아 나는 새싹에 감동하는 여린 심성을 가지기도 했다. 또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비록 민주화 투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진 않았지만 빈민, 노동, 인권, 장애인등 거의 모든 운동단체에 후원을 하고 집회마다 찾아다니며 우두커니 지켜보는 일을 자신의 최소한 지켜야할 참여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한편 그는 알콜 중독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관한 웃지 못할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비타협적 성격으로 교회 안팎의 많은 사람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던 그는 한마디로 괴짜요 예언자적 면모를 갖고 있었다.

  초야에 묻혀있던 그는 환갑이 지난 나이에 투쟁의 전면으로 나서게 된다. 작년부터는 자신이 위중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향리 사격장철폐투쟁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조국인 미국을 상대로 '양키 고 홈'을 외쳤다. 그리고 모처럼 동해안 여행길을 나섰는데 병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끝내 영면하셨다. 그리고 그를 아끼던 많은 이들이 생의 정점에 선 한 성숙한 인간의 죽음을, 한 예언자를 잃어버린 이 시대를 조용히 슬퍼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서 로베르토 신부의 삶의 궤적들을 살펴보면서 관객들에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정신의 폭과 깊이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기 위해 기획되었다. 관객들은 한 사람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극복하면서 성장해 가는 과정과 그 사람과 이 세상이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혹은 독립해 있는지를 지켜보게 될 것이며 참 사람의 조건에 대해 스스로 묻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연출의 변

  서 신부님과의 인연은 상계동 철거촌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상계동엔 꽤 많은 분들이 출입하셨지만 그 양반은 특별히 인상에 남는 분이었다. 우람한 체구와 턱수염 덕이기도 했지만 전혀 폼을 잡지 않으셨고 살벌한 철거촌에서도 푸근한 느낌을 주시곤 했다. 또 무서운 듯 보이지만 장난기가 가득해서 사람들을 곧잘 웃기시기도 했고 주민들과 섞여 라면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후 이런저런 시위나 집회에서 마주치기도 했고 또 당진에 계실 때는 가끔씩 내려가 만나 뵙기도 했다. 마침 집사람과도 가까워서 가끔 집에도 오셨는데 덩치에 안 어울리게 조그만 장난감을 아이들 손에 쥐어주시기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분과 긴 대화를 해보거나 깊은 인연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다. 무심하고 부족한 내 주변머리 탓이지만 괴팍한 그분 성질에 질린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접근하는데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 언젠간 당진에 놀러갔을 때 신부님을 내 차로 교회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했는데 차시동이 꺼져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다. 나는 당황해서 이리저리 차를 만지고 있는데 그분은 화난 표정으로 혼자 가기 시작했다. 난 쫓아가며 죄송하다고 했지만 들은 척도 안 했고 난 그 양반이 미워져 한동안은 보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이 작품을 할 기회가 없었다면 난 그 분을'좀 재밌고 이상한 양반'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애초 그분에 관한 기록물을 만들자고 제의 받았을 때 나는 회의적이었다. 서 신부님에 대해 자신도 없었고 자료가 제한 되어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 개인을 특화 시키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지 생각해 봐야했고 사진 찍히기조차 싫어하던 양반이 자신의 기록영화를 만든다면 좋아할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그 양반을 좀 더 알고 싶기도 했고, 영상자료가 없기 때문이라도 모으고 만들어 나가야한다는 점, 그리고 당신이 무척 영화를 좋아하니까 관심 있어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누군가 자꾸 옆구리를 찌르기도 했고 이 시대에 서 신부님만큼 매력 있고 드라마틱한 삶을 산 분이 어디 있는가. 잘하면 상품도 되겠다하는 욕심도 있긴 했다.)

  지난 4월부터 서 신부님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 분들은 신부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얘기하고 싶어했고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셨다.  사진이나 비디오, 편지같은 자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특히 미국에 계신 동생과 친구가 직접 찍어 보내주신 비디오 화면을 보면서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대략적인 구성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작품 구성은 서 신부님의 인생을 주요 단계로 나눈 연대기축으로 하되 그분의 인간적 특징들이 드러날 수 있도록 약간씩 변형을 꾀했다. 그리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담고 여러 각도에서 서 신부님을 보려고 노력했다.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그 분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알콜 중독 증세와 그를 극복하는 과정들, 그리고 거침없는 성격에서 빚어지는 주변과의 갈등의 순간들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80년대 이후 신부님을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탁월한 학식과 실천성을 존경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70년대 중반이전까지 그는 대책 없는 술꾼임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해보니 광주교구시절 서 신부님을 좋아하는 신자들은 소수였고 특히 72년이후 목포 연동성당 시절부터는 '대부분 신자들은 전임신부를 그리워할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았다.

  물론 독특한 개성과 타고난 유머, 반골 기질 때문에 그때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당시 서신부님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많이 흔들리기도 한 '미운 오리새끼'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그러나 술을 끊은 후인 부산 금정본당의 신자들은 모두 그의 성실하고 희생적인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두 시절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분명한데 마치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알콜중독 후유증의 심각성을 미루어 생각해보면 술끊은 이후에도 눈부신 활동과 편해 보이는 인상 뒤에는 피나는 노력과 고통이 있었음이 짐작되었다. 아마 서 신부는 엄청난 독서량을 통해 후유증을 극복해 나갔고 그 과정에서 그는 신앙과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새롭게 정리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과 가설을 바탕으로 나는 작품의 틀을 '자신의 약점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 새롭게 태어났고 자신의 약함 때문에 인간과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지게 된 한 사람'으로 잡았다. 

  곰곰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이긴 하지만 신부에 대한 이런 나의 해석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썩 잘 표현된 것 같지도 않다. 하긴 서 신부같이 크고 깊고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람을 몇 달의 연구를 통해 채 한시간도 안 되는 비디오에 담는 다는 건 애초 무리였던 것 같다. 그래도 작업 과정에서 서 신부를 가깝게 느끼게 되었고 그때 왜 내게 신부님이 화를 내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는 수준까진 되었다. 지난 몇 달은 정말 서 신부님과 함께 산 기분이다. 작업을 끝내고도 아직도 머리 속엔 서 신부님에 대한 생각만 맴맴 돌고 있다. 그 양반과의 본격적인 인연이 비로소 시작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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